Texts
네 어깨 위에 올린 손으로
(하모닉 드라이브 전시 서문)
김민훈
# 2024년 10월 28일.
지금은 장항제련소 피해자 연대 대표 선생님과 오랜 통화를 마치고 집 반대를 향해 걷고 있다. 일제에 의해 1936년에 건설된 이후, 비철금속 제련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 산업화에 일조한 제련소. 구름 향해 우뚝 솟은 굴뚝이 뿜어낸 검은 연기는 내리는 비를 타고 주변의 토양에 울컥울컥 해로운 것을 내리박아 그 땅을 밟는 너를 아프게 만들었다. 근대화를 과거로 여기는 우리가 여기 있기까지 떠나보내야 했던 넋의 사진을 보고 너를 보는 마음이 애절하다. 파도가 오갈 때마다 바다와 땅의 멍은 점점 선명해졌는데, 너의 마음을 꿰뚫고 지나간 서리 같은 일이 단 돈 몇 푼의 위로금으로 네 손에 쥐어졌을 때 너의 얼굴은 어땠나요? 여기저기 어딘가에 남은 몇 가닥 상흔으로 상상할 수 있을 뿐.
너는 아프고, 억울했기에 도움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네가 몸에 해로운 것이 누적되고 있었다는 것을 안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고, 굴뚝의 주인도 바뀌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법을 소급적으로 적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니까. 오랜 투쟁으로 시간이 지나 피해자들 사이의 유대는 점차 말라가고 말았다.
# 2024년 11월 10일.
나는 지금 제련소 부근의 해변에 앉아있다. 금강 하구가 바다와 맞닿아 푸른 생명들이 꽃피우던 이곳은 거대한 기둥이 들어선 후 망가져버렸다. 만시지탄. 발에 톡 차이는 소라 껍데기, 여기에 귀를 대면 날카로운 비명이 들리려나? 아니에요. 끙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요.
# 2024년 10월 26일.
지역 축제가 한창인 곳에서 이 글을 쓴다. 아이돌 가수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어린아이들을 보다가 여기서 이 글을 쓰기로 다짐한다. 일렬로 늘어서 징과 장구를 두드리는 늙은 여자들을 보다가 이 전시에 대해 떠올리기로 한다. 한 손에는 푸르고 붉은 풍선을 들고 한 손에는 사랑하는 이의 손을 맞잡은 너를 보다가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기쁘고 슬퍼진다. 다른 어느 때도 아닌 지금 여기 우리가 있다.
너의 얼굴은 거울이다. 너의 발은 기둥이다. 너의 손은 집게다. 그렇기 때문에 너의 얼굴을 통해 나는 세상을 보았고, 너의 발을 통해 세상을 딛었고, 너의 손을 통해 세상을 잡았다. 너는 나의 그림자이자 빛이고, 뿌리이자 날개다. 그런 와중 너는 나에게 너고, 나는 너에게 너다. 어느 순간 너는 나에게서 분리되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너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너의 발이 문드러지고 너의 손이 오물을 뒤집어써도 나의 세계는 어여쁘다. 내 세계의 바닥이 용암이 되어 모든 것을 천천히 집어삼켜도 너의 세계는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려나?
나는 작년 이맘때 옵서버:조각(OS) 작가들에게 협업에 관해 이야기했다. 작업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알았으니 누군가와 함께 하며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기왕이면 그 누군가는, 나를 언제나 지탱하고 있는 것이지만, 내가 잘 모르던, 혹은 잘 드러나지 않던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흥미를 보인 그룹 내 일부 작가와 함께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했고, 각자는 서로 다른 이들과 만나 하나의 연대를 꾸렸다. '협업'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힘과 노력이, 우리로 하여금 목소리 없는 수고와 존재를 돌아보게 했다. 그러므로 《Harmonic Drive》는 함께 한다. 올해 봄부터 우리는, 그것이 설령 몇 개월의 짧은 여정일지라도, 전국 곳곳에서 공동체를 이어갔다. 그렇기에 나는 차가운 마룻바닥에 엎드려 엉엉 우는 너를 떠올리다가, 뜨거운 투쟁의 순간에 흘리는 너의 치열한 눈물을 닦다가, 너를 여기 있게 한 사람의 숙련된 노동을 기억하다가, 누군가를 닮았기에 스러져간 철의 얼굴을 쫓다가, 맑은 눈으로 깔깔 웃던 어린 추억을 돌보다가, 바랜 집들이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게 된 곳을 떠도는 발자국을 그리다가 너의 실천을 바라본다.
# 네 어깨 위에 올린 손으로.
2년 전, 우리는 조각 속에 어떤 특수한 조건이 있다면 그것을 파악하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때 우리는 '조각을 하는 수행적인 행위', '조각이 안고 있는 혼종성', '조각을 바라보는 행위'에 대해서 각각의 전시를 열었다. 그 후로 나에게 여백으로 남겨진 것은, 이 모든 일들을 지탱하고 있는 무언가였다. 2년 동안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Harmonic Drive》로 돌아왔을 때, 결국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책임, 그리고 서로 연결됨을 연구하는 실천적인 무엇이었다. 협력하거나 나눠지는 실천, 지역과 맥락 속에서 오랜 시간 마주 보는 실천, 아픈 몸과 잃은 얼굴과 바랜 도시를 재건하는 실천으로.
타자가 되어버린 것들 속에서, 너무 다른 우리 서로 손을 잡았어. 나의 어깨에는 너의 손이 있어. 네 어깨에는 나의 손이 있어. 호랑이가 쫓아오는 날엔 우리 같이 동아줄을 잡을까? 그렇게 낮과 밤을 껴안는 빛이 되어버리자. 그러므로 이것은 광화문 광장에서 백만 차별의 유성이 메아리칠 때 우리가 보낸 시간들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겨우내 세운 깃발이 유성처럼 추락할 때 우리가 매만진 어제와 내일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젖과 꿀 대신 포탄과 기름이 흐른 유성의 바닥이 사나울 때 우리가 돌아본 톱니바퀴다.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완결되지 않은 편지와 질문을 보낸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전체는 일부를 설명할 수 없고, 일부는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조각들이 모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완결되지 못한 대화 속에서, 함께 만드는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책임을 비출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손, 서로의 어깨 위에 올린 손을 통해 그 너머로 이어질 것이다.
권지선
✉ 지선 님, 덕분에 저는 놀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떠올려볼 수 있었어요.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 속에 퍼져 있는 웃음과 분노, 불안과 환희를 모두 품어내고자 한 당신의 것들은, 단순한 형의 합을 넘어, 삶을 구성하는 감정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는 일종의 무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비약이지만, 삶의 무게를 버티는 초상으로 볼 수 있을까요? 협업자들이 그린 드로잉이 서로 얽히고 섞여 새로운 것으로 탄생할 때, 무엇이 중요했었나요? 협업자들과 대화할 때, 그들의 방긋 웃는 얼굴 혹은 골똘함에 빠져 떨리는 손끝까지, 당신에게는 놀이의 어떤 한 장면으로 기억되려나요? 조각을 만드는 동안, 당신은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 느꼈을 즐거움과 고민을 눈과 귀로 느끼며, 어떤 순간에 가장 공감했나요? 협업자들이 각자의 선과 색으로 만들어낸 드로잉이 하나의 조각으로 결합되는 것은, 그들의 목소리와 당신의 손이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당신은 그 조각이 하나의 진리로서 다가오길 바랐나요, 아니면 끊임없는 물음으로 남아있길 원했나요? 지선 님, 당신의 것들은 잊은 약속처럼 손 닿지 않는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놀이라는 것은 때로 가볍지만, 그 안에 숨겨진 무게는 세상을 담기도 하네요. 잃어버린 기억을 본 듯한 기분으로, 이 글을 보냅니다.
김연진
✉ 연진 님, 생명력과 회복이 실타래 속에 묶여, 만져지고 들리는 형태로 세상에 드러났네요. <부드러운 팔> 작업을 하며 당신의 할머니와 함께 한 순간의 글 조각들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하셨죠. 그리고, 지킬, 촉(이혜린, 최세윤) 분들과 함께 한 <한 번도 원한 적 없어>를 제작하는 과정 역시 쉽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몇 번이나 작업이 엎어졌죠. 혹시 그 순간, 당신은 고통 속에서 무언가를 빚어내는 의지의 순간을 보셨나요? 작은 방울이 햇빛에 반짝이고, 바람에 울부짖는 순간 당신은 무엇을 보았나요? 협업이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당신의 과정을 통해 느꼈습니다. 서로 다른 고집과 접촉에서 발생하는 충돌과 이해, 포기는 어쩌면 연결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접촉’이라는 주제에 다가서며, ‘접촉이란 한 번도 원한 적 없더라도 발생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 순간까지도 당신이 포기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이 작업이 당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하네요. 당신과 협업자들이 만든 조각은 저에게 손을 내미는 것만 같습니다. 저도 그 손을 잡아 잘 살아가보겠습니다. 당신이 내민 손길이 얼마나 따스한 것인지 상상하며, 이 글을 보냅니다.
김중균
✉ 중균 님, 당신이 빚어낸 소설의 초상을 보다가, 찬영 님과 대화한 내용을 읽다가, 서로 다른 매체가 만나 발현하는 해상도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습니다. 언어를 시각으로 옮기는 시도가 혹여 독후감이 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셨다고요. 하지만 당신의 것은 그보다 더 넓고 깊은 곳에 있는 듯합니다. 여기서 시각과 언어의 상호 매체성을 이야기할 때 종종 언급되는 ‘에크프라시스’를 떠올려 봅니다. 그것은 본 대상을 명료하게 기술하기 위한 수사학의 시도였죠. 이것이 시각적 경험을 언어로 포섭하려는 것이라면, 당신은 반대로 언어를 시각적 형태로 끌어내어 구체적인 내러티브를 만드는 트랜스-매체 실험을 했습니다. 소설이 가진 무형의 질서들이 조각 속에 자리 잡았네요. 이때 혹시 형태라는 것이 제약이 되지는 않았나요? 그 모호함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당신의 모습이 떠올립니다. 텍스트가 품고 있던 무언가를 ‘살려낸’ 동시에, 또 다른 무언가가 함께 태어났다는 인상이 남아서요. 이건, 조각이 가진 ‘응집’의 힘이 오히려 텍스트의 비물질성을 빛내어 모든 것을 반사시켜 버리는 순간이기도 했을 것 같아요. 찬영 님은 소설이 몸을 얻었을 때 자존감이 회복됨을 경험했다고 하시는데, 당신은 어떤 것을 경험했나요? 두 분의 우정이 너무 아름다워 보이네요. 세상을 묘사하는 당신의 방법이 많은 것을 견인하길 바라며, 이 글을 보냅니다.
노경민
✉ 경민 님, 당신이 만든 풍경 앞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공간에 공간을 이식한다는 당신의 표현을 떠올리면서요. 공간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방식이 제국주의적이라는 생각을 드문드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공간이 누군가의 삶과 역사, 흔적을 머금고 있다면 더욱 그렇겠죠. 하지만 당신의 실천에서는 그와 반대로, 공간의 이야기를 숨죽여 들으려는 마음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장소를 소유하려 하기보다 그 장소에 얹혀 살아간다는 감각이요. 당신이 발굴한 이야기, 죽창을 들고 보낸 진외조부의 밤들이 그림자가 되어 당신의 것에 남았네요. 그렇기에 비인간, 당신의 말을 빌리자면 ‘주체가 아닌 것’과 협업을 선택한 것이 매끄러워 보입니다. 그런, 공간을 주체가 아닌 것으로 여길 수 있나요? 그 표현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당신의 태도는, 공간의 역사와 무게를 마주하면서도, 조금 물러서서 그 이야기가 흐르는 것을 지켜보려는 듯 보여요. 비인간의 시간, 나무, 흙과 돌과 물의 시간을 엮어내면서요. 장소의 기억을 자신의 이야기로 이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했었죠. 장소와 장소의 만남이라는 것, 그 가운데에 자기가 있다고요. 그렇기에 당신의 작업은 그곳에서 나고 자란 많은 것을 기념하는 장이 되고, 동시에 그 자리에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소망하게 하네요. 당신이 빚어갈 세월의 편린들이 빛을 잃지 않길 바라며, 이 글을 보냅니다.
손원혁
✉ 원혁 님, 미장 작업이라는 기술적 수행을 당신의 문맥으로 어떻게 끌고 온 것인가요?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했을 때 적절한 방법이 되나요? 당신의 시도는 오래된 논제인 권위의 구조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것은 ‘평생 미장을 업으로 종사하신 아버지’가 비노동시간에 당신을 위해 노동을 하며 보냈을 시간을 떠올렸기 때문인데요. 아버지의 기술이 단순히 구현을 위한 도구로만 기능한 것이 아니라면, 그 과정에서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감각을 맞추는 시간을 보내셨겠죠. 마찰의 순간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런 경험들이 작업 이후에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될까요? 시멘트는 정말 흥미로운 재료입니다. 시멘트가 영원히 굳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과장된 말이겠지만, 시멘트는 물과 수화 반응을 시작한 후로 100년 동안 천천히 경화되고, 그 후 100년 동안 천천히 노화된다고 합니다. 저는 이를 우스갯소리로 ‘유동하는 물질’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이 성질은 당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다시 떠올리게도 하네요. 견고해 보이지만, 계속 변화하고 있는 시멘트처럼 두 분의 관계도 정해진 모습이 아니라 서로의 역할과 시간 속에서 계속 변해가겠지요. 그 유동의 순간들이 쌓여서 비로소 나중에 단단하게 결합된 형태를 이룰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이, 당신의 말처럼 아버지와 ‘조립’된 순간일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쌓아 올린 기억이 견고해지길 바라며, 이 글을 보냅니다.
조윤정
✉ 윤정 님, 흔들림에 대한 탐구는, 당신의 드로잉이 그렇듯, 스며들어 울렁이는 파문을 남기기는 것 같습니다. 흔들린다는 것은 어쩌면 불안과 균형의 가느다란 외줄 위에서 각자의 마음속 고독을 독백하는 과정 같기도 합니다. 당신은 언제 흔들리나요? 흔들리는 상태에선, 그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선, 자연스레 타인의 마음을 마주 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29인의 응답이, 타인의 이야기가 다시 당신에게 돌아와 무언가를 묻는 순간이 있었겠죠. 그 진동 속에서 당신은 서로의 말을 어떻게 마주 보고 이어나갔나요? 상상하건대, 그 과정에서 중요했던 것은, 생면부지의 답변자들이 서로 연동되어 있음을,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연결된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겠습니다. 누군가의 떨림은 누군가의 숨이 되고, 그 바람은 누군가의 진동이 되었습니다. 무수한 연결망 속에서 당신은 무엇을 바라보았나요? 진동과 진동, 그것이 하나의 큰 목소리가 되는 순간을 상상해 봅니다. 그 큰 소리는 어쩌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지진이 되어, 익숙한 것들의 경계를 흩트릴 수도 있겠네요. 응답을 드로잉으로 옮길 때,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는 당신의 다정한 배려를 기억합니다. 그 태도 덕분에, 당신의 것들은 한순간의 진동을 잡아 놓은 것이 아닌, 오랜 흔들림 속에서도 변화에 대한 희망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이 고요한 진동이 시들지 않길 바라며, 이 글을 보냅니다.
최낙준
✉ 낙준 님, 작년 초, 작업실이 급하게 필요해 난처하던 저에게 서울 외곽의 작업실을 흔쾌히 내주셨죠. 재개발을 앞둔 그곳은 당신이 오랫동안 살아온 곳이라 했습니다. 빛바랜 간판들과 낮은 건물들 사이에서, 당신은 제게 이곳을 되살리려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들을 소개했었습니다. 얼마 전, 협업이 실패한 것 같아 우려된다고 하셨죠. 재개발 보상과 관련해 조사관들이 지역을 방문했었고, 때문에 인터뷰를 하기로 했던 분들과의 약속이 좌절되었다고요. 그럼에도 당신은 그곳의 일상과 기억을 담은 사물을 대하며, 또 다른 연대의 방식을 발견했네요. 당신이 생각하는 실패는 무엇이고, 성공은 무엇인가요? 여기저기 구멍이 나 내장이 튀어나오고, 뒤집어진 채 당신을 마주한 의자는, 퍽 애처로워 보였겠습니다. 그 의자에서 당신은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셨나요? 누군가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덥혀졌을 의자는, 비를 맞고 바람에 쓸려 차갑게 식어버렸어요. 그 낡은 의자를 딛고 서 있는 새 의자는 재개발의 흔적을 딛고 선 새 질서를 보여주나요? 당신의 눈을 통해 의미와 기억을 이어주는 사물을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 조각들이 모여 탑이 되어가는 모습은, 마치 오래된 신앙의 행위처럼, 당신이 바라는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따뜻한 의식처럼 다가옵니다. 이음의 기운을 느끼며, 이 글을 보냅니다.
함현영
✉ 현영 님, 어린 기억들을 도깨비로 빚은 당신의 것을 보며 여러 생각이 교차하네요. 어릴 적 공포와 두려움이 지금 내 앞에 형상으로, 만져질 수 있는 대상으로 내려와 서 있다면, 그 모습은 얼마나 생경할까요? 아마 그 순간은 비로소 그것을 마주 보고, 손을 내밀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만 같습니다. 공포를 시각화하고, 불안을 손끝으로 빚어낸 미술의 오래된 실천들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그렇다면 아이들이 만든 도깨비는, 과거 당신이 느꼈던 공포와 어떤 점이 다다르고, 어떤 점이 닮아 있나요? 그들의 두 눈을 질끈 감게 한 것들은 어떤 것이었나요? 함께 바느질을 하며 당신이 비춘 것은, 그저 어린이들의 두려움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흐르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낯선 것을 대면할 때의 떨림이나 어딘가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 한 올 한 올 손바느질로 엮였으니까요.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것들을 무서워하던 아이, 혹은 친구와의 관계나 남들의 시선에 두려움을 호소하던 아이를 대면할 때, 당신은 과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나요? 지나온 당신의 발걸음을 돌아보며, 길을 잃었던 작은 마음들을 돌아보기도 했나요? 아이들의 인형은 두려움에서 출발했지만, 그 안엔 이해와 연결을 갈구하는 우리 모두의 목소리가 흐르네요. 어느 여건 속에서도, 두려움과 마주할 수 있는 담대함을 잃지 않길 바라며, 이 글을 보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길을 걷는다. 외로울 때, 당신이 내 어깨 위에 올려둔 손을 생각하면서. 겨울이 옵니다. 왜인지 이번 겨울은 따뜻할 것 같아서요. 조심히 가세요.
(하모닉 드라이브 전시 서문)
김민훈
# 2024년 10월 28일.
지금은 장항제련소 피해자 연대 대표 선생님과 오랜 통화를 마치고 집 반대를 향해 걷고 있다. 일제에 의해 1936년에 건설된 이후, 비철금속 제련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 산업화에 일조한 제련소. 구름 향해 우뚝 솟은 굴뚝이 뿜어낸 검은 연기는 내리는 비를 타고 주변의 토양에 울컥울컥 해로운 것을 내리박아 그 땅을 밟는 너를 아프게 만들었다. 근대화를 과거로 여기는 우리가 여기 있기까지 떠나보내야 했던 넋의 사진을 보고 너를 보는 마음이 애절하다. 파도가 오갈 때마다 바다와 땅의 멍은 점점 선명해졌는데, 너의 마음을 꿰뚫고 지나간 서리 같은 일이 단 돈 몇 푼의 위로금으로 네 손에 쥐어졌을 때 너의 얼굴은 어땠나요? 여기저기 어딘가에 남은 몇 가닥 상흔으로 상상할 수 있을 뿐.
너는 아프고, 억울했기에 도움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네가 몸에 해로운 것이 누적되고 있었다는 것을 안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고, 굴뚝의 주인도 바뀌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법을 소급적으로 적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니까. 오랜 투쟁으로 시간이 지나 피해자들 사이의 유대는 점차 말라가고 말았다.
# 2024년 11월 10일.
나는 지금 제련소 부근의 해변에 앉아있다. 금강 하구가 바다와 맞닿아 푸른 생명들이 꽃피우던 이곳은 거대한 기둥이 들어선 후 망가져버렸다. 만시지탄. 발에 톡 차이는 소라 껍데기, 여기에 귀를 대면 날카로운 비명이 들리려나? 아니에요. 끙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요.
# 2024년 10월 26일.
지역 축제가 한창인 곳에서 이 글을 쓴다. 아이돌 가수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어린아이들을 보다가 여기서 이 글을 쓰기로 다짐한다. 일렬로 늘어서 징과 장구를 두드리는 늙은 여자들을 보다가 이 전시에 대해 떠올리기로 한다. 한 손에는 푸르고 붉은 풍선을 들고 한 손에는 사랑하는 이의 손을 맞잡은 너를 보다가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기쁘고 슬퍼진다. 다른 어느 때도 아닌 지금 여기 우리가 있다.
너의 얼굴은 거울이다. 너의 발은 기둥이다. 너의 손은 집게다. 그렇기 때문에 너의 얼굴을 통해 나는 세상을 보았고, 너의 발을 통해 세상을 딛었고, 너의 손을 통해 세상을 잡았다. 너는 나의 그림자이자 빛이고, 뿌리이자 날개다. 그런 와중 너는 나에게 너고, 나는 너에게 너다. 어느 순간 너는 나에게서 분리되는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너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너의 발이 문드러지고 너의 손이 오물을 뒤집어써도 나의 세계는 어여쁘다. 내 세계의 바닥이 용암이 되어 모든 것을 천천히 집어삼켜도 너의 세계는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려나?
나는 작년 이맘때 옵서버:조각(OS) 작가들에게 협업에 관해 이야기했다. 작업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알았으니 누군가와 함께 하며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기왕이면 그 누군가는, 나를 언제나 지탱하고 있는 것이지만, 내가 잘 모르던, 혹은 잘 드러나지 않던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흥미를 보인 그룹 내 일부 작가와 함께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했고, 각자는 서로 다른 이들과 만나 하나의 연대를 꾸렸다. '협업'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힘과 노력이, 우리로 하여금 목소리 없는 수고와 존재를 돌아보게 했다. 그러므로 《Harmonic Drive》는 함께 한다. 올해 봄부터 우리는, 그것이 설령 몇 개월의 짧은 여정일지라도, 전국 곳곳에서 공동체를 이어갔다. 그렇기에 나는 차가운 마룻바닥에 엎드려 엉엉 우는 너를 떠올리다가, 뜨거운 투쟁의 순간에 흘리는 너의 치열한 눈물을 닦다가, 너를 여기 있게 한 사람의 숙련된 노동을 기억하다가, 누군가를 닮았기에 스러져간 철의 얼굴을 쫓다가, 맑은 눈으로 깔깔 웃던 어린 추억을 돌보다가, 바랜 집들이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게 된 곳을 떠도는 발자국을 그리다가 너의 실천을 바라본다.
# 네 어깨 위에 올린 손으로.
2년 전, 우리는 조각 속에 어떤 특수한 조건이 있다면 그것을 파악하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때 우리는 '조각을 하는 수행적인 행위', '조각이 안고 있는 혼종성', '조각을 바라보는 행위'에 대해서 각각의 전시를 열었다. 그 후로 나에게 여백으로 남겨진 것은, 이 모든 일들을 지탱하고 있는 무언가였다. 2년 동안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Harmonic Drive》로 돌아왔을 때, 결국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책임, 그리고 서로 연결됨을 연구하는 실천적인 무엇이었다. 협력하거나 나눠지는 실천, 지역과 맥락 속에서 오랜 시간 마주 보는 실천, 아픈 몸과 잃은 얼굴과 바랜 도시를 재건하는 실천으로.
타자가 되어버린 것들 속에서, 너무 다른 우리 서로 손을 잡았어. 나의 어깨에는 너의 손이 있어. 네 어깨에는 나의 손이 있어. 호랑이가 쫓아오는 날엔 우리 같이 동아줄을 잡을까? 그렇게 낮과 밤을 껴안는 빛이 되어버리자. 그러므로 이것은 광화문 광장에서 백만 차별의 유성이 메아리칠 때 우리가 보낸 시간들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겨우내 세운 깃발이 유성처럼 추락할 때 우리가 매만진 어제와 내일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젖과 꿀 대신 포탄과 기름이 흐른 유성의 바닥이 사나울 때 우리가 돌아본 톱니바퀴다.
이제 나는 여러분에게 완결되지 않은 편지와 질문을 보낸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전체는 일부를 설명할 수 없고, 일부는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조각들이 모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완결되지 못한 대화 속에서, 함께 만드는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책임을 비출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손, 서로의 어깨 위에 올린 손을 통해 그 너머로 이어질 것이다.
권지선
✉ 지선 님, 덕분에 저는 놀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떠올려볼 수 있었어요.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 속에 퍼져 있는 웃음과 분노, 불안과 환희를 모두 품어내고자 한 당신의 것들은, 단순한 형의 합을 넘어, 삶을 구성하는 감정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는 일종의 무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비약이지만, 삶의 무게를 버티는 초상으로 볼 수 있을까요? 협업자들이 그린 드로잉이 서로 얽히고 섞여 새로운 것으로 탄생할 때, 무엇이 중요했었나요? 협업자들과 대화할 때, 그들의 방긋 웃는 얼굴 혹은 골똘함에 빠져 떨리는 손끝까지, 당신에게는 놀이의 어떤 한 장면으로 기억되려나요? 조각을 만드는 동안, 당신은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 느꼈을 즐거움과 고민을 눈과 귀로 느끼며, 어떤 순간에 가장 공감했나요? 협업자들이 각자의 선과 색으로 만들어낸 드로잉이 하나의 조각으로 결합되는 것은, 그들의 목소리와 당신의 손이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당신은 그 조각이 하나의 진리로서 다가오길 바랐나요, 아니면 끊임없는 물음으로 남아있길 원했나요? 지선 님, 당신의 것들은 잊은 약속처럼 손 닿지 않는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놀이라는 것은 때로 가볍지만, 그 안에 숨겨진 무게는 세상을 담기도 하네요. 잃어버린 기억을 본 듯한 기분으로, 이 글을 보냅니다.
김연진
✉ 연진 님, 생명력과 회복이 실타래 속에 묶여, 만져지고 들리는 형태로 세상에 드러났네요. <부드러운 팔> 작업을 하며 당신의 할머니와 함께 한 순간의 글 조각들이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하셨죠. 그리고, 지킬, 촉(이혜린, 최세윤) 분들과 함께 한 <한 번도 원한 적 없어>를 제작하는 과정 역시 쉽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몇 번이나 작업이 엎어졌죠. 혹시 그 순간, 당신은 고통 속에서 무언가를 빚어내는 의지의 순간을 보셨나요? 작은 방울이 햇빛에 반짝이고, 바람에 울부짖는 순간 당신은 무엇을 보았나요? 협업이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당신의 과정을 통해 느꼈습니다. 서로 다른 고집과 접촉에서 발생하는 충돌과 이해, 포기는 어쩌면 연결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접촉’이라는 주제에 다가서며, ‘접촉이란 한 번도 원한 적 없더라도 발생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 순간까지도 당신이 포기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이 작업이 당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하네요. 당신과 협업자들이 만든 조각은 저에게 손을 내미는 것만 같습니다. 저도 그 손을 잡아 잘 살아가보겠습니다. 당신이 내민 손길이 얼마나 따스한 것인지 상상하며, 이 글을 보냅니다.
김중균
✉ 중균 님, 당신이 빚어낸 소설의 초상을 보다가, 찬영 님과 대화한 내용을 읽다가, 서로 다른 매체가 만나 발현하는 해상도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습니다. 언어를 시각으로 옮기는 시도가 혹여 독후감이 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하셨다고요. 하지만 당신의 것은 그보다 더 넓고 깊은 곳에 있는 듯합니다. 여기서 시각과 언어의 상호 매체성을 이야기할 때 종종 언급되는 ‘에크프라시스’를 떠올려 봅니다. 그것은 본 대상을 명료하게 기술하기 위한 수사학의 시도였죠. 이것이 시각적 경험을 언어로 포섭하려는 것이라면, 당신은 반대로 언어를 시각적 형태로 끌어내어 구체적인 내러티브를 만드는 트랜스-매체 실험을 했습니다. 소설이 가진 무형의 질서들이 조각 속에 자리 잡았네요. 이때 혹시 형태라는 것이 제약이 되지는 않았나요? 그 모호함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당신의 모습이 떠올립니다. 텍스트가 품고 있던 무언가를 ‘살려낸’ 동시에, 또 다른 무언가가 함께 태어났다는 인상이 남아서요. 이건, 조각이 가진 ‘응집’의 힘이 오히려 텍스트의 비물질성을 빛내어 모든 것을 반사시켜 버리는 순간이기도 했을 것 같아요. 찬영 님은 소설이 몸을 얻었을 때 자존감이 회복됨을 경험했다고 하시는데, 당신은 어떤 것을 경험했나요? 두 분의 우정이 너무 아름다워 보이네요. 세상을 묘사하는 당신의 방법이 많은 것을 견인하길 바라며, 이 글을 보냅니다.
노경민
✉ 경민 님, 당신이 만든 풍경 앞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공간에 공간을 이식한다는 당신의 표현을 떠올리면서요. 공간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방식이 제국주의적이라는 생각을 드문드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공간이 누군가의 삶과 역사, 흔적을 머금고 있다면 더욱 그렇겠죠. 하지만 당신의 실천에서는 그와 반대로, 공간의 이야기를 숨죽여 들으려는 마음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장소를 소유하려 하기보다 그 장소에 얹혀 살아간다는 감각이요. 당신이 발굴한 이야기, 죽창을 들고 보낸 진외조부의 밤들이 그림자가 되어 당신의 것에 남았네요. 그렇기에 비인간, 당신의 말을 빌리자면 ‘주체가 아닌 것’과 협업을 선택한 것이 매끄러워 보입니다. 그런, 공간을 주체가 아닌 것으로 여길 수 있나요? 그 표현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당신의 태도는, 공간의 역사와 무게를 마주하면서도, 조금 물러서서 그 이야기가 흐르는 것을 지켜보려는 듯 보여요. 비인간의 시간, 나무, 흙과 돌과 물의 시간을 엮어내면서요. 장소의 기억을 자신의 이야기로 이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을 했었죠. 장소와 장소의 만남이라는 것, 그 가운데에 자기가 있다고요. 그렇기에 당신의 작업은 그곳에서 나고 자란 많은 것을 기념하는 장이 되고, 동시에 그 자리에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소망하게 하네요. 당신이 빚어갈 세월의 편린들이 빛을 잃지 않길 바라며, 이 글을 보냅니다.
손원혁
✉ 원혁 님, 미장 작업이라는 기술적 수행을 당신의 문맥으로 어떻게 끌고 온 것인가요?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했을 때 적절한 방법이 되나요? 당신의 시도는 오래된 논제인 권위의 구조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것은 ‘평생 미장을 업으로 종사하신 아버지’가 비노동시간에 당신을 위해 노동을 하며 보냈을 시간을 떠올렸기 때문인데요. 아버지의 기술이 단순히 구현을 위한 도구로만 기능한 것이 아니라면, 그 과정에서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감각을 맞추는 시간을 보내셨겠죠. 마찰의 순간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런 경험들이 작업 이후에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될까요? 시멘트는 정말 흥미로운 재료입니다. 시멘트가 영원히 굳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과장된 말이겠지만, 시멘트는 물과 수화 반응을 시작한 후로 100년 동안 천천히 경화되고, 그 후 100년 동안 천천히 노화된다고 합니다. 저는 이를 우스갯소리로 ‘유동하는 물질’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이 성질은 당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다시 떠올리게도 하네요. 견고해 보이지만, 계속 변화하고 있는 시멘트처럼 두 분의 관계도 정해진 모습이 아니라 서로의 역할과 시간 속에서 계속 변해가겠지요. 그 유동의 순간들이 쌓여서 비로소 나중에 단단하게 결합된 형태를 이룰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이, 당신의 말처럼 아버지와 ‘조립’된 순간일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쌓아 올린 기억이 견고해지길 바라며, 이 글을 보냅니다.
조윤정
✉ 윤정 님, 흔들림에 대한 탐구는, 당신의 드로잉이 그렇듯, 스며들어 울렁이는 파문을 남기기는 것 같습니다. 흔들린다는 것은 어쩌면 불안과 균형의 가느다란 외줄 위에서 각자의 마음속 고독을 독백하는 과정 같기도 합니다. 당신은 언제 흔들리나요? 흔들리는 상태에선, 그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선, 자연스레 타인의 마음을 마주 보게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29인의 응답이, 타인의 이야기가 다시 당신에게 돌아와 무언가를 묻는 순간이 있었겠죠. 그 진동 속에서 당신은 서로의 말을 어떻게 마주 보고 이어나갔나요? 상상하건대, 그 과정에서 중요했던 것은, 생면부지의 답변자들이 서로 연동되어 있음을,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연결된 존재라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겠습니다. 누군가의 떨림은 누군가의 숨이 되고, 그 바람은 누군가의 진동이 되었습니다. 무수한 연결망 속에서 당신은 무엇을 바라보았나요? 진동과 진동, 그것이 하나의 큰 목소리가 되는 순간을 상상해 봅니다. 그 큰 소리는 어쩌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지진이 되어, 익숙한 것들의 경계를 흩트릴 수도 있겠네요. 응답을 드로잉으로 옮길 때,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는 당신의 다정한 배려를 기억합니다. 그 태도 덕분에, 당신의 것들은 한순간의 진동을 잡아 놓은 것이 아닌, 오랜 흔들림 속에서도 변화에 대한 희망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이 고요한 진동이 시들지 않길 바라며, 이 글을 보냅니다.
최낙준
✉ 낙준 님, 작년 초, 작업실이 급하게 필요해 난처하던 저에게 서울 외곽의 작업실을 흔쾌히 내주셨죠. 재개발을 앞둔 그곳은 당신이 오랫동안 살아온 곳이라 했습니다. 빛바랜 간판들과 낮은 건물들 사이에서, 당신은 제게 이곳을 되살리려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들을 소개했었습니다. 얼마 전, 협업이 실패한 것 같아 우려된다고 하셨죠. 재개발 보상과 관련해 조사관들이 지역을 방문했었고, 때문에 인터뷰를 하기로 했던 분들과의 약속이 좌절되었다고요. 그럼에도 당신은 그곳의 일상과 기억을 담은 사물을 대하며, 또 다른 연대의 방식을 발견했네요. 당신이 생각하는 실패는 무엇이고, 성공은 무엇인가요? 여기저기 구멍이 나 내장이 튀어나오고, 뒤집어진 채 당신을 마주한 의자는, 퍽 애처로워 보였겠습니다. 그 의자에서 당신은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셨나요? 누군가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덥혀졌을 의자는, 비를 맞고 바람에 쓸려 차갑게 식어버렸어요. 그 낡은 의자를 딛고 서 있는 새 의자는 재개발의 흔적을 딛고 선 새 질서를 보여주나요? 당신의 눈을 통해 의미와 기억을 이어주는 사물을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 조각들이 모여 탑이 되어가는 모습은, 마치 오래된 신앙의 행위처럼, 당신이 바라는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따뜻한 의식처럼 다가옵니다. 이음의 기운을 느끼며, 이 글을 보냅니다.
함현영
✉ 현영 님, 어린 기억들을 도깨비로 빚은 당신의 것을 보며 여러 생각이 교차하네요. 어릴 적 공포와 두려움이 지금 내 앞에 형상으로, 만져질 수 있는 대상으로 내려와 서 있다면, 그 모습은 얼마나 생경할까요? 아마 그 순간은 비로소 그것을 마주 보고, 손을 내밀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만 같습니다. 공포를 시각화하고, 불안을 손끝으로 빚어낸 미술의 오래된 실천들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그렇다면 아이들이 만든 도깨비는, 과거 당신이 느꼈던 공포와 어떤 점이 다다르고, 어떤 점이 닮아 있나요? 그들의 두 눈을 질끈 감게 한 것들은 어떤 것이었나요? 함께 바느질을 하며 당신이 비춘 것은, 그저 어린이들의 두려움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흐르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낯선 것을 대면할 때의 떨림이나 어딘가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 한 올 한 올 손바느질로 엮였으니까요.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것들을 무서워하던 아이, 혹은 친구와의 관계나 남들의 시선에 두려움을 호소하던 아이를 대면할 때, 당신은 과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나요? 지나온 당신의 발걸음을 돌아보며, 길을 잃었던 작은 마음들을 돌아보기도 했나요? 아이들의 인형은 두려움에서 출발했지만, 그 안엔 이해와 연결을 갈구하는 우리 모두의 목소리가 흐르네요. 어느 여건 속에서도, 두려움과 마주할 수 있는 담대함을 잃지 않길 바라며, 이 글을 보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길을 걷는다. 외로울 때, 당신이 내 어깨 위에 올려둔 손을 생각하면서. 겨울이 옵니다. 왜인지 이번 겨울은 따뜻할 것 같아서요. 조심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