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호랑이적인 것에 관해
김민식
김민훈은 조각을 통해 감각, 기억, 관계의 구조를 엮어왔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물성의 구축을 넘어서 조각이 놓이는 위치와 몸의 관계, 조각을 감각하는 방식 자체를 질문한다. 흙, 소금, 나무, 밧줄과 같은 재료들은 단단한 형태보다 그 표면과 결을 통해 내재된 시간과 몸의 흔적을 환기하며, 손의 반복적인 동작, 흔들리는 구조, 균열과 이음의 과정 속에서 조각이 사회적 구조와 맞닿아 있음을 드러낸다. 특히 그는 장식적이거나 일시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위들을 통해 조각이 얼마나 정교하게 신체와 권력, 관습과 서사에 결속되어 있는지를 시각화해왔다. 머리에 쓰는 조각, 몸을 따라 움직이는 조각 등은 그가 구축해온 언어의 확장 위에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업은 동명의 두 조각 〈Tigerish Piece〉이다. 이 작업은 큐브 구조와 로프라는 명료한 요소를 중심으로 하지만, 그 배치와 구성에서 감각의 경계, 거리, 그리고 조각을 감각하는 방식의 전환을 실험한다. 한 조각은 두개의 큐브를 세 가닥으로 땋은 로프로 관통하고 있으며, 다른 조각은 하나의 큐브를 세 가닥으로 땋은 로프가 두 번 관통한다. 두 구조는 나란히 놓이지만 전혀 다른 시간성과 감각적 흐름을 지닌다.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미니멀리즘의 형식적 규율에 다시 질문을 던진다. 외형적으로는 로버트 모리스의 〈Rope Piece〉를 참조하고 있으나, 그의 큐브를 직선으로 연결하는 단일한 로프가 김민훈의 손에서는 세 가닥으로 땋아진 신체적 시간의 선으로 전환된다. ‘땋기'는 장식이 아니라 오랜 문명사 속에서 사회적 위치와 생존 전략, 공동체의 내러티브를 새겨왔던 몸의 언어다. 그가 언급한 것처럼 머리카락이라는 가장 개인적인 선은 매듭을 만드는 기술을 통해 사회와 감정을 직조하는 도구가 되어왔다. 이는 단순히 조형적인 결정이 아니라, 감각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큐브를 관통한 로프는 경계와 흐름 사이를 오가며 공간을 잇는다. 사회적으로 통제와 경고의 의미를 가진 호랑이 무늬 로프는 여기에서 질서의 상징이 아니라 부드럽고 느슨하게 이어지는 감각의 통로가 된다. 경고의 시각적 사물은 관계를 여는 구조로 변모한다. 반면 고리를 이룬 또 다른 조각은 단일한 큐브에 묶인 하나의 로프가 자기 자신을 감싸 안으며 공간에 부유한다. 이 줄은 목적지나 종착지를 지시하지 않고, 다만 흐름과 중력을 따라 자기 안의 궤도를 그린다. 이 조형적 결정은 땋는 손과 땋아지는 몸 사이의 관계를 상기시키며, 감각의 거리와 연결의 윤리를 함께 떠올리게 만든다.
두 구조는 물리적으로 병치되지만, 관객의 감각 안에서는 서로 다른 리듬을 구성한다. 하나는 외부 구조를 연결하며 공간을 가로지르고, 다른 하나는 자기 몸의 경계를 따라 맴돈다. 이처럼 〈Tigerish Piece〉는 선으로 감각을 구성하고, 큐브라는 구조를 빌려 조각과 조각, 조각과 몸 사이의 긴장을 풀어낸다. 물리적 관통은 감각적 흐름의 시작점이 되며, 이때 조각은 더 이상 중심을 세우거나 단일한 의미로 수렴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작업은 조각을 통해 ‘거리'라는 감각을 구조화하고, 그 안에서 관계가 어떻게 생성되고 멈추고 감긴 채로 머무는지를 탐색한다.
김민훈은 이번 작업을 통해 기존의 조형 언어를 연장하면서도 한층 더 확장된 감각의 층위를 제시한다. 그의 최근 작업 중 머리에 쓰는 조각이 물리적 중심을 이동시켰다면, 이번 작업은 감각의 결을 따라 중심 없이도 관계를 성립시킨다. 그는 언제나 조각이라는 매체를 통해 감각을 다루어 왔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그 감각이 사회적 신체와 공간 구조, 그리고 이음의 기술로까지 확장되며 더욱 밀도 있게 다가온다.
《파란 나라를 보았니》라는 전시 속에서〈Tigerish Piece〉는 어떤 고정된 이상향을 재현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얼마나 느슨하게 엮일 수 있는지, 거리를 두고서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조형적으로 제안한다. 큐브는 움직이지 않지만, 그 사이의 줄은 흐르고 흔들린다. 중심이 아니라 흐름에 가까운 세계. 힘의 균형이 아닌 결의 리듬이 작동하는 장소. 그것이 김민훈이 조각을 통해 상상하는 가능성의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