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Future’s made of virtual insanity now
(Virtual Insanity 전시 서문)
김민훈
시공간이 재편된 것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다. 디지털,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메타버스. 이런 말들은 어느새 우리 가까이에 존재한다. Virtual Insanity는 현실과 가상이라는 두 길항의 괴리, 그 속에서 활동하는 우리의 통섭적 행위를 주목하고자 한다. 세 작가는 가상과 현실을 동시에 통과하며 그 둘을 어떻게 엮어내고 있을까?
Virtual Insanity
포켓몬고 플레이 경험은 가상 현실에 대해 어느 순간 몰입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획의 출발점이 되었다. 6년 가까이 지난 지금, 포켓몬고를 인터넷에 검색하니 GPS 조작이라는 말이 자동으로 따라 붙는다. GPS 조작... 나는 어쩔 수 없이 또 이것에 대해 떠올린다.
2023년, 결국 (다시), 나는 핸드폰에 무력하게 존재하는 가상 생명체를 떠올린다. 그리고 버튼 한 번에 생명이 존재하고 사라지는 물리적 지지체에 관해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생명으로 인식하는 것이 꽤 이질적으로 느껴지면서도, 이것을 포기할 방도가 달리 생각나지 않는다. 2G 핸드폰을 사용하던 시절부터 겪은 것들, 그러니까 강아지 키우기 게임 같은 경험이 중첩되어 가상 생명체에 대한 정동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 Future’s made of virtual insanity now. Always seems to, be govern’d by this love we have for useless, twisting, our new technology.” — Jamiroquai, Virtual Insanity.
Virtual Insanity는 96년에 발매된 Jamiroquai의 동명의 노래에서 시작했다. 애시드 재즈 특유의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미래가 다른 무엇도 아닌 가상의 광기로 만들어졌다고 외친다. 가상의 광기. 나는 이 말을 곱씹는다. 과연 가상과 광기는 마치 씨실과 날실처럼 엮이며 미래를 직조해 내고 잇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일찍이 ‘인간은 세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하는 거대한 생명체로서보다는, 여러 지점을 연결하고 그 실타래를 교차시키는 네트워크로서 경험’할 것이라 했는데, 그렇다면 이 네트워크 망 안에서, 여기 세 명은 어떤 모습으로 가상과 현실을 엮어내는지?
그렇다면, 이삭 줍는 사람들
우리는 흔히 스마트 기기를 통해 가상 현실에 관한 몰입과 지각의 인지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서 친숙하고도 낯선 심리적 거리감을 마주한다. 인스타그램의 증강현실 필터나 포켓몬고의 가짜 생명 등이 현실과 맺는 불가분의 관계를 떠올려보자. 그 속에서 여기 세 작가는 각자의 관점으로 열화 복제된 가상(현실)과 (가상)현실을 살아간다. 그들이 발휘하는 세계와의 해석적 상호작용성에서, 비약이지만, 주체의 주체성을 파악해 보려는 (헛된) 논의를 펼쳐보고 싶다. 가상 현실을 지탱하는 물리적 현실 세계를 살아내는 작가들은 가상과 현실의 교환 속에서 발생하는 괴리를 어떻게 바라볼까?
축적되는 미래에서 우리는 무엇을 그려볼 수 있을까? 기술의 지휘 하에서 무엇을 주울 수 있을까? 실재하는 질료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제작 행위에서 채집과 수집의 과정이란 무엇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그리하여 전시 Virtual Insanity는 살짝 우회하여, 가상 현실에서의 수집 과정과 현실에서의 수집 과정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이 비교는, 이미 침투성이 높은 다공적 공간으로 변모한 현실이 어떻게 대상(주체)에게 다공성을 요구하는지 파악하려는 시도이며, 그렇기 때문에 유효할 것이라 기대를 해 본다.
그렇다면 여기 세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꺼내는가? 신희상은 텅 비어버린, 도무지 알 수 없는 물체가 되어버린 사물들을 손으로 만지는 문제에 천착한다. 예로부터 촉각은 모든 관계의 본질적 요소다. 그러므로 텅 비어버린 사물을 실재하는 몸의 신체적인 접촉을 통해 껴안는 신희상의 조각은 시시포스적으로 현존을 찾아가려는 몸짓처럼 보인다. ‘모르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다’고 말하는 신희상은, 역설적으로 실재 사물에 대한 애호의 감정으로 이어 언급할 두 작가와 사뭇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최현희는 가상과 현실의 낙차를 주목한다. <물곰과 포켓캠프 동물들> 연작에서는 콘솔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 등장하는 가상 유기체를 그려내어 메타적으로 이미지의 물성과 새로운 감각을 실험하기도 하고, <우산 이끼와 실루엣> 연작에서는 체외 기관인 현미경을 통해 바라본 단안 단서적 장면을 확대하기도 한다. 매개체 없이 맨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은 가상의 존재이며 동시에 실재의 존재이다. 최낙준은 이성질체 구조1를 조각의 이름으로 호명했다. 때문에 가상을 포함한 세상을 편집 가능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강화된다. 다시 말해, 그는 포토샵적인 세계관을 체화하여, 일종의 다층적 레이어를 현실에 투사한다.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 이미지의 레이어를 실물로 소환한 조각과, 물리적인 작용 없이 만들어진 가상의 소리를 조합하여 만든 음악은 가성의 것이나 실재 존재이고, 실재의 것이나 가상 존재이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시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것을 SNS에 포스팅한다. 그러곤 SNS를 둘러본다. 방대한 양의 정보들, 나는 개중 내 관심을 끄는 것을 확대해 본다. 나는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가 알 필요가 없다. 알 수가 없다. 안다고 할 수도 없다. 알 수 있는 건, 내 손에 느껴지는 핸드폰의 단단한 촉감 뿐이다.
1 Isomer Structure. 분자식은 같으나 분자 내에 있는 구성원자의 연결 방식이나 공간 배열이 동일하지 않은 화합물을 의미한다.
(Virtual Insanity 전시 서문)
김민훈
시공간이 재편된 것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다. 디지털,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 메타버스. 이런 말들은 어느새 우리 가까이에 존재한다. Virtual Insanity는 현실과 가상이라는 두 길항의 괴리, 그 속에서 활동하는 우리의 통섭적 행위를 주목하고자 한다. 세 작가는 가상과 현실을 동시에 통과하며 그 둘을 어떻게 엮어내고 있을까?
Virtual Insanity
포켓몬고 플레이 경험은 가상 현실에 대해 어느 순간 몰입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기획의 출발점이 되었다. 6년 가까이 지난 지금, 포켓몬고를 인터넷에 검색하니 GPS 조작이라는 말이 자동으로 따라 붙는다. GPS 조작... 나는 어쩔 수 없이 또 이것에 대해 떠올린다.
2023년, 결국 (다시), 나는 핸드폰에 무력하게 존재하는 가상 생명체를 떠올린다. 그리고 버튼 한 번에 생명이 존재하고 사라지는 물리적 지지체에 관해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생명으로 인식하는 것이 꽤 이질적으로 느껴지면서도, 이것을 포기할 방도가 달리 생각나지 않는다. 2G 핸드폰을 사용하던 시절부터 겪은 것들, 그러니까 강아지 키우기 게임 같은 경험이 중첩되어 가상 생명체에 대한 정동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 Future’s made of virtual insanity now. Always seems to, be govern’d by this love we have for useless, twisting, our new technology.” — Jamiroquai, Virtual Insanity.
Virtual Insanity는 96년에 발매된 Jamiroquai의 동명의 노래에서 시작했다. 애시드 재즈 특유의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미래가 다른 무엇도 아닌 가상의 광기로 만들어졌다고 외친다. 가상의 광기. 나는 이 말을 곱씹는다. 과연 가상과 광기는 마치 씨실과 날실처럼 엮이며 미래를 직조해 내고 잇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일찍이 ‘인간은 세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하는 거대한 생명체로서보다는, 여러 지점을 연결하고 그 실타래를 교차시키는 네트워크로서 경험’할 것이라 했는데, 그렇다면 이 네트워크 망 안에서, 여기 세 명은 어떤 모습으로 가상과 현실을 엮어내는지?
그렇다면, 이삭 줍는 사람들
우리는 흔히 스마트 기기를 통해 가상 현실에 관한 몰입과 지각의 인지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서 친숙하고도 낯선 심리적 거리감을 마주한다. 인스타그램의 증강현실 필터나 포켓몬고의 가짜 생명 등이 현실과 맺는 불가분의 관계를 떠올려보자. 그 속에서 여기 세 작가는 각자의 관점으로 열화 복제된 가상(현실)과 (가상)현실을 살아간다. 그들이 발휘하는 세계와의 해석적 상호작용성에서, 비약이지만, 주체의 주체성을 파악해 보려는 (헛된) 논의를 펼쳐보고 싶다. 가상 현실을 지탱하는 물리적 현실 세계를 살아내는 작가들은 가상과 현실의 교환 속에서 발생하는 괴리를 어떻게 바라볼까?
축적되는 미래에서 우리는 무엇을 그려볼 수 있을까? 기술의 지휘 하에서 무엇을 주울 수 있을까? 실재하는 질료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제작 행위에서 채집과 수집의 과정이란 무엇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이어진다. 그리하여 전시 Virtual Insanity는 살짝 우회하여, 가상 현실에서의 수집 과정과 현실에서의 수집 과정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이 비교는, 이미 침투성이 높은 다공적 공간으로 변모한 현실이 어떻게 대상(주체)에게 다공성을 요구하는지 파악하려는 시도이며, 그렇기 때문에 유효할 것이라 기대를 해 본다.
그렇다면 여기 세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꺼내는가? 신희상은 텅 비어버린, 도무지 알 수 없는 물체가 되어버린 사물들을 손으로 만지는 문제에 천착한다. 예로부터 촉각은 모든 관계의 본질적 요소다. 그러므로 텅 비어버린 사물을 실재하는 몸의 신체적인 접촉을 통해 껴안는 신희상의 조각은 시시포스적으로 현존을 찾아가려는 몸짓처럼 보인다. ‘모르는 상태가 가장 이상적이다’고 말하는 신희상은, 역설적으로 실재 사물에 대한 애호의 감정으로 이어 언급할 두 작가와 사뭇 다른 태도를 보여준다. 최현희는 가상과 현실의 낙차를 주목한다. <물곰과 포켓캠프 동물들> 연작에서는 콘솔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에 등장하는 가상 유기체를 그려내어 메타적으로 이미지의 물성과 새로운 감각을 실험하기도 하고, <우산 이끼와 실루엣> 연작에서는 체외 기관인 현미경을 통해 바라본 단안 단서적 장면을 확대하기도 한다. 매개체 없이 맨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은 가상의 존재이며 동시에 실재의 존재이다. 최낙준은 이성질체 구조1를 조각의 이름으로 호명했다. 때문에 가상을 포함한 세상을 편집 가능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강화된다. 다시 말해, 그는 포토샵적인 세계관을 체화하여, 일종의 다층적 레이어를 현실에 투사한다.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 이미지의 레이어를 실물로 소환한 조각과, 물리적인 작용 없이 만들어진 가상의 소리를 조합하여 만든 음악은 가성의 것이나 실재 존재이고, 실재의 것이나 가상 존재이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시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것을 SNS에 포스팅한다. 그러곤 SNS를 둘러본다. 방대한 양의 정보들, 나는 개중 내 관심을 끄는 것을 확대해 본다. 나는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가 알 필요가 없다. 알 수가 없다. 안다고 할 수도 없다. 알 수 있는 건, 내 손에 느껴지는 핸드폰의 단단한 촉감 뿐이다.
1 Isomer Structure. 분자식은 같으나 분자 내에 있는 구성원자의 연결 방식이나 공간 배열이 동일하지 않은 화합물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