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update : 2024.12.20.                            mminh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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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장을 기억하며

          QF(하상현)

          《Bench Side》는 남자들이 달리는 운동장과 그곳을 둘러싼 벤치에 관한 전시다. 쉽사리 재현되지 않는 소수자의 자리가 있다고 느꼈고, 그것을 다루고 싶었다. 한 명의 퀴어로서 일상에서 느끼는 감각과 미술이 퀴어를 재현하는 방식이 다소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퀴어는 즐겁고gay, 다채로운 ‘무지개색’1과 같은 것인 만큼이나, 우울하고, 규범에 명확히 저항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회색 지대 위에 놓인다. ‘벽장’에 숨은 사람,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박쥐’같은 인간, 동거를 하지만 가족에게 애인을 ‘아는 형’으로 소개할 수밖에 없는 연인들. 이들은 자부심보다는 수치심에 둘러 쌓여 있다.

          드러나지 않으려는 이들의 감각을 어떻게 포착할 수 있을까? 밝은 광장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안으로 숨어든 욕망은 어떻게 미술의 언어로 나타날까? 전시에서 소개된 작업들은 쉽게 ‘퀴어’로 알아차릴 수 있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보단 그들이 택한 특정한 추상 언어로 식별 불가능하게 숨어 있다. 이는 양효실 필자가 감지한 대로 “유비나 미메시스가 아닌 흉내mimucry의 차원”에서 드러난다. 포식자의 눈을 피해 나뭇잎으로 자신을 위장하는 대벌레나, 바위나 산호 같은 주변 환경의 패턴을 자신의 피부로 취하는 문어처럼 말이다. 

          ‘추상’이 일종의 방어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몇 가지 계기가 있다. 그 중 처음 만난 것은 『커버링』의 저자 켄지 요시노다. 그는 책 앞머리에서 자신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도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스스로를 숨겨야 했던 그는, 침묵하면서도 말하고자 하는 욕구에 시달렸다. 그는 시적 추상의 세계로 도피했다. 그에게 시는 산문처럼 직접 내용을 말하지 않지만, 형식적이고 은폐된 방식으로 ‘꽤나’ 드러나는 무엇이었다. 켄지 요시노가 시적인 충동 이면의 은폐된 계기를 바라보게 했다면, 미학자 조주연은 재현을 벗어난 미술 행위의 심리적 추동을 살피게 했다. 그는 재현과 재현 이후의 추상 양식을 구분하며 이를 설명한다.

          “재현으로 귀결되는 심리적 충동이 바쟁에게서는 소중한 존재를 간직하고픈 마음이고 보링거에게서는 세계에 감정이입하여 참여하는 마음인데, 이런 두 마음은 세게에 대하여 긍정, 신뢰, 동경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재현 이후 혹은 재현과 다른 양식을 낳는 심리적 상태에 대한 설명에서... (보링거는) 자연주의적 재현과 상반되는 기하학적 추상 양식이 충격, 불안, 공포로 인해 세계로부터 후퇴하는 심리 상태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3

          이에 따르면 추상 충동은 “외부 세계의 현상이 인간 내면에 야기한 불안감의 산물”로부터 생겨난다. 이러한 ‘세계와 합치되지 못하는 감각’은 퀴어의 삶에는 익숙한 것이다. 분명히 세계에 있지만 없는 것으로 취급되는, 한 번도 자신의 집과 가족을 가져보지 못한 존재들은 구체적인 세계와 재현의 형식으로부터 후퇴한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utopia에서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꿈을 꾼다.

1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는 1978년 6월 미국 최초의 동성애자 시의원인 하비 밀크 Harvey Bernard Milk(b.1930-1978)가 예술가 길버트 베이커 Gilbert Baker(b.1951)에게 의뢰해 만들었다. 소수자 인권운동을 향한 수많은 이들의 노고와 희생은 마땅히 기억되고 애도 되어야 한다.
2 켄지 요시노,  『커버링』, 김현경 외 옮김, 민음사, 2017. 켄지 요시노는 뉴욕 대학교 법학 대학원 헌법학과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해당 저서는 주류에 부합되도록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정체성의 표현을 자제하는 것을 ‘커버링’으로 명명하며, 이를 미국 내 법적 판례의 구체적인 사례들로 설명한다.
3 조주연, 『현대미술강의』, 글항아리, 2017, 45쪽.



          김민훈은 고정된 이미지와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명사적인 대상을 지양하고, 조각 제작의 ‘동사적 행위’를 따라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또 그 과정을 개인전 《GRABO》(2022)로 보여줬다. 조각의 행위와 재료 그 자체에 집중하는 이러한 태도를 신진 조각가의 진지한 물성 탐구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알려진 명사적 이미지에 자신의 자리가 없음을 직관적으로 파악한 작가적 선택이기도 하다. 행위를 따라가 만들어진 조각에도 어떠한 이미지가 생겨나지만, 그것은 ‘사회적인 것’으로서 밝은 재현의 체계에서 한 발 물러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손과 촉각에 더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행위 자체의 추상적인 욕망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어쩌면 자신이 퀴어란 사실을 잊으며 또 잊지 않을 수 있도록. 작가는 주무르고, 갈고, 깎고, 때론 품에 안아 보며 애착 인형처럼 대상을 조각한다. 행위를 하는 동안 우리는 모두 잠시 인간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형상은 주로 수직으로 솟아 잇다. 전통적으로 남성적인 형상으로 여겨져 온 수직 형상은 작가의 손에 의해 사적이고 끈적한 방식으로 다뤄진다. 크고 우뚝 솟은 것을 선망하는 작가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수직성을 상상한다. 이를테면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는 대부분 버려진 것들이다. 전시장 폐기물, 바다에서 짠 성분을 오랫동안 머금은 버려진 밧줄, 미관상의 목적으로 잘려진 가로수의 가지들. 이것들은 시대의 규범적인 시선, 효율성과 속도에 의해 잘려지거나 방치된 대상들이다. 작가는 이를 그러모아 잠시 세운다.

          전시에 출품된 <DUO 1>과 <DUO 2> (2022)는 독특한 방식의 수직성을 보여준다. 작업은 값싸고 얇은 (그렇기에 귀중한 재료가 아닌) MDF 판으로 만들어졌다. 관객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조각의 형상을 만난다. 어떤 각도에서는 판의 중앙이 비워져 음각의 수직 형상이 드러나고, 또 다른 각도에서는 조각을 지탱하기 위한 얇고 물리적인 두께 면이 드러난다. 광고판, LED 디스플레이, 캔버스와 같은 ‘면적 사물plane object’은 넓은 면적에 대비되는 납작한 두께와 사각형 판 모양을 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면적 사물을 추상화한다. 그리고 ‘보여지는 면’과 ‘쉽게 지각하기 어려운 두께면’을 동선상에서 교차시킨다. 이는 관객이 형상의 여러 차원을 볼 수 있도록, 또 형상이 보이는 것에서 달아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드러남과 숨는 것이 교차하는 감각은 사회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드러남을 매 순간 다르게 조작해야 하는 퀴어의 일상적 감각과 닿아 있다. 이는 ‘무엇이 드러날지’를 구성하는 ‘프레임’을 다루는 일이자, 판이 세워지기 위한 ‘최소한의 두께’와 같은 물리적인 현실을 자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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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Bench Side (d/p, Seoul)